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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도서리뷰] 자동차 문화에 시동걸기

by TENTMAKER 2017. 4. 20.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옛날에 읽었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작가님이 하도 많이 인용하셔서 뇌리에 박힌 문장이다. <자동차문화에 시동걸기>를 읽고 난 감상을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위의 문장만큼 잘 표현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냥 도로를 지나다니는 네 발 달린 저 기계들이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집합체로 보였다.


‘붕붕이’는 우리집의 오랜 경차였던 2008년식 모닝의 별칭이다. 원래 경차면 다같은 경차여서 티코나 마티즈나 모닝이나 다 똑같은 차량인 줄 알았고, 차이라고 한다면 모닝이 조금 더 커 보인다는 정도였다. 어릴 때 기억으로 티코가 대우국민차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많이 내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카피 문구가 “새로운 세대, 새로운 차, 티코!”였는데(CM송이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기억이 나는걸 보니...), 지금까지 티코가 우리 기술로 만든 경차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일본 스즈키의 알토를 수입하여 내놓은 차란다. 국.민.차.라며!!! 왠지 속은 느낌. 이럴 거면 ‘대우국민차’가 아니라, ‘대우일본수입차‘라고 해야하지 않나. ’국민‘이란 단어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거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차 기준과 일본의 경차 기준이 다른데, 그 이유가 같은 기준이라면 경차천국인 일본이 우리나라 경차시장을 그대로 접수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기준을 달리한다는 말이 있다. 또 일본 기준인 배기량 660cc로는 우리나라 소비자를 만족시킬만한 출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앞에 말도 일리가 있고, 뒤에 말도 일리가 있다. 1,000cc 모닝이 80마력인데, 오르막길을 제대로 올라가려면 에어컨을 꺼야 한다. 과장이 아니라 에어컨을 켜고 오르면 뒤에서 빵빵거리며 “으이그, 경차!”라고 말하는 것 같다.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이 또 있었는데, 스포티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현재 자동차는 세단보다는 suv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그 시초가 기아의 스포티지라는 것을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다. 소위 ‘국뽕’이라고 해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는 근거없는 허세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글쓴이는 스포티지의 역사를 조곤조곤 잘 설명하고 있다. 스포티지를 명차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없던 suv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이 말에 공감한다. 스티브잡스를 대단한 인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없는 시장을 만들어 업계 개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포티지도 그런 의미에서 명차로 평가하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그냥 디자인이 예쁜 차에서 선구자로서의 산전수전 다 겪은 상남자의 포스가 느껴졌다. 


같은 미국차라도 포드와 GM은 기업문화가 참 다르다. 포드는 합리적인 이미지의 미국메이커임에도 배타적인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좋게 보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효율성을 추구하고, 나쁘게 보면 시야가 좁고 거대 기업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어 고집스럽고 상당히 빡빡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력관계와 힘이다. 시장점유율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판매량이 뒤처지더라도 비싼 차가 많이 팔린다면 그것을 더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재밌는 것은 포드가 기아를 인수하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당연히 기아가 현대 산하의 글로벌 메이커로 인식되지만 IMF 당시에는 거의 포드에게 넘어간 거나 진배없었다. 하지만 포드 내의 알력관계로 기아인수를 외치는 웨인부커 부사장의 입김이 줄어든 탓에 기아를 현대에 넘기고 말았다. 기아를 놓친 포드는 한국이라는 양질의 저가차량 공급기지를 상실하게 되었다. 

GM은 그 자체가 브랜드는 아니고 그룹 내 여러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은 쉐보레 브랜드로 한국 시장에 론칭되어 있다. GM이야 말로 가장 미국적인 기업으로 보인다. 일단 여러 브랜드가 모여 있는 것이, 50개 국가(?)가 모여 하나의 연합국가를 이루고 있는 미국의 모습과 흡사하고, 기업 분위기가 포드와는 다르게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해답을 찾아려고 노력한다. GM은 수익성보다 시장점유율을 중시하는데, 이는 시장점유율을 지키고 있으면 나중에 경기가 좋아질 때 많이 팔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서 포드는 여전히 수입차량 메이커이지만 GM은 국산차로서 10%대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GM의 한국 철수설이 루머로 돌아다니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GM은 국내 시장에서 중요한 메이커로 대우받고 있다. 일사분란한 포드보단 중구난방의 GM이 현재로선 더 괜찮은 선택과 진행상황을 보이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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